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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2016.12.21 09:52

임동영 조회 수:12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작가
한나 아렌트
출판
한길사
발매
200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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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직장인들은 눈치를 많이 보고 산다. 능력과 실력 위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직장에서 성공 여부가 인간관계에 의해서 특히 상사와의 인간관계에서 결정된다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그런데 우리는 가끔 이러한 관계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위에서 지시한 것은 아무런 판단없이 바로 실행하는 경향이 있다.실제로 회사조직에서 위에서 지시했다는 이유만으로 프로젝트의 경제성이 부족하거나 사회적으로 해악이 되는 일들을 ‘사유’없이 행하는 일이 회사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또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윗선의 컨펌을 받으면 자신은 이제 면죄되었다라고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자신이 다칠 위험이 있으면 윗선에 보고하여 책임을 위선에 전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조직사회에서 어쩔 수 없다고하지만 뭔가 찜찜하다. 이것은 회사에서 우리 샐러리맨의 자존감을 확보하는데 장애요소로도 작용을 한다. 위에서 시키는대로만 하면 우리는 괜찮은 것일까?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랜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2차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에 앞장선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보고서를 세상에 알렸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오스트리아를 거처 이탈리아로 넘어갔고 이탈리아의 한 신부의 도움을 얻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도망한다.  '리하르트 클레멘트'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아이히만은 자동차 세일즈맨 등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1961년에 체포되어 전범으로서 이스라엘 예루살렘 법정에 서게된다. 한나 아렌트는 전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이히만에 대한 분석작업을 하였다. 

그녀는 아이히만이 3가지 분야에서 무능했다고 하였다. 말하기의 무능, 생각의 무능, 판단의 무능이 그것이다. 물론 세가지 무능은 서로 연관되어있다. 아이히만은 평범한 사람이었고 그의 범죄는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라는 것이 그녀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그는 정신병자였을까? 한나 아렌트의 보고서에 의하면 6명의 정신과 의사가 그가 정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유대인에 대한 광적인 증오나 열광적인 반유대주의나 세뇌교육의 희생양일까? 아이히만의 친한 친구중에 친유대적 사고를 가진 친구도 있었고 양어머니의 사촌이 유대인 여자와 결혼했는데 그 여자의 주선으로 유대인 회사에서 일한적도 있고 전쟁중에 유대인 여자 정부를 둔 적도 있었다. 그가 유대인을 딱히 증오할만한 이유도 없었다. 한나 아렌트는 앞서 말한 아이히만의 세가지 무능 즉, 말하기의 무능, 생각의 무능, 판단의 무능이 평범한 아이히만이 그러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언급하면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 주장했다. 즉 말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고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라도 언제든지 악을 저지를 수 있다고 말 한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마이클 센델 교수는 한나 아렌트가 보편주의에 빠졌다고 비판했지만 나는 한나 아렌트의 말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샐러리맨은 아이히만처럼 말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고 판단하지 못할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치스가 처음부터 유대인 학살 정책을 펼쳤던 것은 아니다. 유대인 정책의 첫단계에서 나치스가 친시온주의적 태도를 채택하였고 아이히만이 유대인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유대인에 관해서 배우고 유대인 전문가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한다. 그 후 나치스는 유대인 동화에서 유대인 추방으로 정책을 바꾸고 아이히만은 오스트리아에서 수십만명의 유대인을 추방하는데 성공하여 승진가도를 달린다.(1937년과 1941년 사이에 그는 4번 승진했다. 14개월도 되지 않아 그는 하급중대 지휘관에서 최고중대 지휘관으로 승진했고 1년 반뒤에는 상급대대 지휘관이 되었다.) 또한 나치스는 유대인은 수용하기 위한 정책, 예를 들면 폴란드에 유대인 국가를 건립한다든지, 마다가스카르로 이주를 계획한다든지 하는 유대인 수용정책을 만들지만 무위로 끝나고 수용인원이 많아지자 정치적 해결이 아닌 물리적 해결을 위해 최종해결책(학살)로 유대인 정책을 선회한다.(나치스는 그들만의 언어규칙을 만들어서 사용하였는데 학살을 처방하는 암호는 최종해결책, 소개, 특별취급 등 이고 이송은 재정착, 동부지역 노동 등으로 불리었다. 이러한 언어규칙은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나치스의 정책이 최종해결책으로 변하는 중요한 회의가 1942년 베를린 교외 Wannsee에서 열린다. 하이드리히는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최종해결책이 유럽 전체에 적용될 경우 발생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한다. 이 회의에서 초청자들은 최종해결책에 대한 단순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제안을 한다. 아이히만은 이 회의의 서기였다. 그가 최종해결책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지만 그는 약간의 의구심을 갖고 있었는데 회의 분위기때문에 이러한 의구심들이 싸그리 사라져버리게 된다. 친위대나 당 뿐아니라 엘리트 공무원들이 이 피투성이의 문제에서 주도권을 갖는 명예를 얻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들을 수 있었기때문이다.

"당시 나는 일종의 본디오 발라도의 감정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느꼈기때문이다." - 184쪽
(본디오 발라도 : 창을 가진 자'란 뜻. 예수 그리스도에게 반역죄를 씌워 사형을 언도한 유대 주재 로마 제5대 총독)

아이히만은 자기 자신의 양심을 무마시킨 가장 유력한 요소는 실제로 최종해결책에 반대한 사람을 한명도, 단 한 명도 볼 수가 없었다는 단순한 사실이었다고 이야기한다. - 186쪽

자신의 상관들이 모여서 결정한 일이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아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유대인을 학살장소로 이동시켰다(아이히만은 학살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고 유대인을 이송하거나 그들의 재산문제를 처리하는 일 등을 담당하였다)는 아이히만은 유죄일까 무죄일까?

아이히만이 학살이 아니라 수송에 종사했기때문에 그가 적어도 자신이 한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고 있었는가가 논쟁이 될 수 있다. 재판부는 아이히만이 동부에서 돌격대가 자행한 1941년 3월에 있었던 대량학살 등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정보를 잘 접하고 있었고 이는 실질적인 참여의 증거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그가 임박한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동을 했을 가능성은 없는지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처형에 참여하기를 거절한 이유로 사형을 받은 친위대 대원들은 단 한사람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임박한 죽음의 위협을 받지 않았다. 

법률 제11조가 열거하는 것처럼 그가 법률행위의 결과가 가져올 위험을 경감시키려고 최선을 다하거나 또는 귀결된 결과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회피하게 위해 최선을 다했기때문에 그는 정상참작을 청원할 수 있는가? 그는 자신이 맹세한대로 모든 명령에 복종했고 '자신이 의무를 항상 완수'하는데 상당한 자부심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물론 '범죄행위의 결과들'을 경감시켜하기보다는 악화시키는데 항상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아이히만의 변호사인 세르바티우스 박사는 아이히만의 행위가 국가행위라는 점을 강조하여 무죄석방을 주장했으나 법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몇몇 특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면소를 시키기는 했지만 15개의 기소항목 모두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내용을 요약하면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살상하고,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신체적인 파멸로 이끌어가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그들에게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해를 끼치고,테레지앤슈타트에서 유대인 여성들의 출산을 금하고 임신을 방해함으로써 이 민족을 파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유대인에 대해 범죄를 저질렀다. 인종적 종교적 정치적 이유에서 유대인을 핍박하였고 유대인에 대해 살인과 연관한 재산의 약탈하였으며, 폴란드인과 슬로베니아인들을 고향에서 추방하였고 집시들을 아우슈비츠로 이송하였고 45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범죄적이라고 분류된 조직(친위대, 보안대, 게퓨타보)에 가담한 죄이다.'

자신이 기소한 범죄들에 대해 교사한 부분에서만 유죄일 뿐이며 공공연한 행위를 자행한 적이 결고 없었다는 것을 아이히만이 줄곧 주장한다. 판결문은 검찰이 이점에서 아이히만이 유죄라는 것을 입증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은 한편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법원은 '일반적으로 살상도구를 자신의 손으로 사용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수록 책임의 정도는 증가한다'라는 판결문으로 아이히만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 342쪽

아이히만은 한번의 항소를 하지만 기각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아이히만은 근엄하게 교수대로 걸어가서 포도주 반병을 마시고 의연하게 죽었다. 한나 아렌트는 이 장면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는 마치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 하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않는 악의 평범성을...  - 마지막 페이지

상사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동의를 하고 아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행위를 단지 명령에 의하여 행하더라도그 행위의 해악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그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법적 해석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의 윤리와 도덕과 양심은 그것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한나 아렌트의 주장일 것이다. 비교의 대상이 일견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우리가 조직생활을 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일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우리 자신들도 알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들이 우리의 의도와 다르게 너무나 평범하게 조직과 사회에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에게 큰 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내 안의 준법기구를 항상 예민하게 가동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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