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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2016.10.18 13:28

임동영 조회 수:18

이 포스트를 보낸곳 (1)

어떻게 살 것인가

작가
유시민
출판
생각의길
발매
201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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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작가라고 주장하지만 요즘 썰전에서 정치평론가로 더욱 주가를 올리고 있는 유시민이 정계은퇴후 자연인이 된 후 쓴 첫 책이다. 개인적으로 정계에 은퇴하고 작가로서 방송인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그를 보는 것이 한 사람의 팬으로서 더 좋다. 평소에 그의 해박한 지식과 사상적 깊이에 기죽어 있었던 나로서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어서 좋은 책이었다.

그가 이책에서 강조한는 것은 한마디로 '자유주의'적 삶이다. 인디밴드 '크라잉넛'을 예로 들면서 그들처럼 자기 주도적 삶을 살으라는 이야기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우론'도 자주 인용된다. 누구보다도 자기 주도적 삶을 살았을 것 같은 그가 닥치는 대로 살았다고 고백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시절 그의 아버지는 영문학을 전공하고나서 철학을 공부하라고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소위 인기학과를 선택하는 현실주의적인 선택을 했다. 그리고 19살에 한 그 선택이 자신의 인생을 반쯤 실패하게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정말 자기가 원하는 공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19살에 신해철이 노래한대로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에 대한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19살에  그와 비슷한 선택을 한 그리고 이제서야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정리되는 듯한 나 자신에게 조금은 위로가 된다.

​유시민이 생각하는 삶을 채우는 것들은 일, 놀이, 사랑, 그리고 연대이다. 특히 일과 놀이가 일치하는 삶을 추구한다. 김정운 교수의 제언처럼 놀이적 삶의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놀이와 직업이 일치하면 베스트다. 놀이를 통한 감각의 기쁨 없이 행복한 삶은 없다. 유시민에게 정치는 직업은 되었으나 놀이는 되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는 우리가 직장에서 놀이적인 요소를 찾지 못하면 그래서 행복하지 못하면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은 현저하게 떨어진다.삶에 놀이적 요소를 가미하는 것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인 것 같다. 노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갖지 말고 놀 거리를 찾자.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재미있고, 좋아하고, 평생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그 유연성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니체가 말한 어린아이적 습성이 필요한 이유다. 어린 아이는 놀이를 하다가 싫증이 나면 바로 다음 놀이를 하면서 재미있게 논다. 하지만 어른은 한가지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게 삶의 유연성을 잃어가면 놀이적인 삶을 찾기가 힘들어진다. 

이러한 이유로 작가는 신념의 도구가 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 누구보다 신념을 가지고 살아온 것으로 보이는 유시민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의아스럽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은 지금에는 보다 큰 그림이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신념을 갖는 것은 좋은 삶으로 이끌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좋은 신념이 좋은 삶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고 좋은 삶을 위한 노력이 좋은 삶으로 이끄는 것이다. 정의당은 신념은 훌륭했지만 부정선거라는 방법론에 문제가 있었다. 캄보디아 대통령의 킬링필드 사례도 마찬가지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남의 종교와 남의 신념을 존중하자.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신념의 도구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칼뱅의 대학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절대주의 폐단을 보여준 사례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시민을 마르크스주의자로 생각할 것 같은데 그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만큼은 생각을 마르크스와 생각을 달리한다. 모두 알다시피 마르크스는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말로 인간의 경제적 여건이 인간의 본성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는 경제적 토대가 그 사람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고 경제적 토대보다 인간이 더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한다. 뇌의 구조를 아는 것이 인문학보다 인간을 이해하는데 도음을 준다. 그런 측면에서 어찌보면 프로이드가 마르크스보다 인간을 더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문명은 욕망과 통제의 싸움이었다. 즉 이드와 슈퍼에고의 싸움이었다. 이드와 수퍼에고의 변증법적인 합일이 에고다.


작가는 자유주의자답게 존엄사를 존중한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그들은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존엄을 선택한 것이다라는 생각이다. 칸트는 자살을 정언명령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자살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몸을 도구화했기때문이다. 그래서 칸트는 자살을 본질적으로 살인과 같다고 했다. 하지만 존엄사를 선택한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유시민은 죽음이 마지막 자유일수 있고 그래서 존엄에 대한 선택을 존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얼마전에 봤던 "미 비포 유(Me before You)"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삶도 그렇지만 죽음에 관한한 당사자(Me)가 타자(You)보다 우선시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존엄사가 아닌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듯이 유물론적으로 해석을 한다. 유물론적으로 바라보아야 죽음도 삶도 해석이 된다는 것이다. 정신작용도 뇌의 물질작용일 뿐이고 우리 몸의 물질작용이 멈추면 우리는 죽는 것이고 우리는 지구라는 별을 떠나는 것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작가는 정말 두려운 것은 생물학적인 죽음보다 철학적 죽음이 앞서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스스로 사고하여 주체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는 철학적은 죽음보다 차라리 생물학적인 죽음이 더 낫다는 것이다. 질 들뢰즈의 자살이 떠오른다. 철학적 죽음을 맞이한 그는 어느날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레이건은 정치인으로서는 꽝이지만 인간으로서는 휼륭했다. 치매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세상에 알리는 마지막 주체적인 행동을 했다. 그는 장례식 마저도 '주체적으로' 치루기를 원한다. 생전 장례식이다. 연암 박지원이 친구들을 모아놓고 즐겁게 세상을 떠났듯이 지인들과 즐겁고 흥겨운 장례식을 원한다.


책을 들기 전에는 자유인으로 돌아와서 쓴 첫 책치고는 주제가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예상외로 가볍고 경쾌하게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그가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고 남은 인생을 계획하는 차원에 쓴 글이었으리라고 짐작해본다. 정치인으로서의 유시민도 좋아했지만 좋은 삶과 좋은 죽음을 고민하는 한 개인으로서의 유시민도 좋았다. 그의 노년 롤모델인 리영희 선생이나  버나드쇼 처럼 80살이 넘어서 쓴 그의 글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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