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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2016.10.16 19:38

임동영 조회 수:18

채식주의자 

작가
한강
출판
창비
발매
200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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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맨부커상 수상으로 떠들썩했던 '채식주의자'에 대한 포스팅을 지금에서야 올린다. 

이 책은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이렇게 세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편이 동시에 쓰여진 것이 아니고 각 편을 쓰는데 상당한 시간차가 있다고 알려져있지만 세 편이 스토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연속성을 가지고 전개된다.

[채식주의자]

영혜는 어느 날 꿈을 꾸고 채식주의자가 된다. 정확히 말하면 '되어버렸다'. 그녀에게는 어린 시절 폭력의 기억이 많다. 월남전 참전했던 군인출신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력과 어렸을 때 자신을 물었던 개를 아버지가 오토바이에 묶어서 질질 끌고가서 개가 죽자 이웃들이 그 개를 삶아먹었던 기억이 너무나 또렸하다.

그녀는 브레지어를 하지 않는다. 봉곳한 가슴은 아무것도 헤치지 않는다. 그런 소중한 가슴을 브레지어로 묶어서 억압할 필요가 없기때문이다.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된 영혜를 남편은 물론이고 가족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남편 회사 상사, 동료들과의 식사자라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자 사람들이 수군거렸고 남편은 상사에게 잘 보여야 하는데 망쳤다고 투덜거렸다. 고기를 먹지 않고 갈수록 말라가는 영혜를 걱정하여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입을 강제로 열어서 탕수육을 먹일려고 하자 영혜는 옆에 있던 과도로 그녀의 손목을 그었다. 그녀의 형부(언니 인혜의 남편)은 하얀 셔츠에 그녀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병원에 그녀를 업고 뛴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녀는 볕이 좋은 날에 웃옷을 모두 벗고 햇볕을 쬔다. 마치 나무처럼...그녀는 아무도 헤치지 않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 아니 나무가 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몽고반점]
영혜의 형부는 비디오 아티스트다. 그는 최근 몇년간 변변한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화장품 가게를 하는 인혜(영혜의 언니)덕분에 생활하는데 지장은 없었지만 제대로 된 작품에 대한 갈증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다가 아내로 부터 영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강한 예술적 영감을 느낀다. 

영혜를 걱정하는 아내 대신 한번 가보겠다고 한다. 정신병원에 퇴원한 후 여대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영혜를 그가 찾아간다. 그가 찾아갔을때 그녀는 샤워를 하고 있었고 그녀의 전신을 보게 된다. 그는 영혜에게 자신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부탁하고 그녀는 승락한다. 그는 영혜의 몸에 꽃을 그리고 그녀의 움직임을 캠코더로 찍었다. 그러면서 그는 강력한 성욕을 느낀다. 금기된 것에 대한 사랑...

첫번째 작품을 마치고 그는 후배 J에게 영혜와 같이 모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한다. 그의 작품에 강한 인상을 받은 J는 그의 제안을 승락하고 영혜와 같이 몸에 꽃을 그리고 같이 야릇한 동작을 취한다. 삽입이 가능하겠냐는 그의 말에 J는 반색을 하고 거절을 한다. 영혜의 젖어버렸다는 말에 그는 영혜와 성관계를 시도하지만 영헤는 거절한다. 

영혜가 J의 몸에 그려진 꽃에 끌렸다는 영혜의 말에 그는 오래전 연인 P에게 부탁하여 그의 몸에 꽃을 그리도록 한다. 몸에 꽃을 간직한 그는 영혜 자취집에 가서 그녀와 몸을 섞는다. 그는 몽고반점이 태고의 진화이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 뜻박에도 성적인 느낌과 무관하며 오히려 실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캠코더에 담는다. 

영혜에게 밑반찬을 가져다주려 온 인혜는 캠코더에 담긴 것을 보고 그녀의 남편과 영혜를 정신병원에 넣을려고 한다. 영혜는 다시 정신병원에 갇히고 남편은 정상으로 판명되어 풀려났지만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져버린다. 

[나무 불꽃]
인혜는 마석에 있는 정신병원에 갇힌 영혜를 자주 찾아간다. 남편도 영혜를 떠나버렸고 부모님도 더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 영혜를 돌볼 사람은 인혜뿐이다. 하지만 영혜의 거식증은 갈수록 심해진다. 고기를 먹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음식도 넘기려고 하지 않는다. 그녀는 음식을 먹지 않아서 위도 파괴되어 출혈을 한다. 


한번은 정신병원에서 행방불명이 되어 인혜가 급하게 병원을 찾았다. 그녀는 나무들 사이에서 우두커니 서있다가 발견되었다. 
그녀는 물구나무를 서며 자신이 나무가 되고 있다는 망상에 빠진다. 그래서 자신은 물만 뿌려주면 된다고 음식은 필요없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게 영혜는 자신의 육체를 버리고 나무가 되어간다.

어제 노벨 문학상 발표에서 보여지듯이 문학이라는 것에 대한 해석의 범위가 넓어지고 그럴수록 작품에 대한 평가는 (이전에도 그러했지만) 더욱 더 일반성과는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어느 상을 탔느냐 보다는 작가와 그의 문체가 그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있고 내가 그 오리지널리티가 마음에 들거나 혹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나에게 혹은 사회적으로 의미를 던져줄 수 있는 작품이면 몇 시간을 흔쾌히 내어서 그 책을 읽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채식주의자'는 상의 수상여부를 떠나서 그 몇 시간의 가치를 충분히 했던 소설이다. '채식주의자' 를 통해서 한강을 처음 만났지만 그녀만의 오리지널리티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굳이 영화로 비유하자면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읽는 내내 뭔가 날카로운 것으로 심장을 긁어내는 듯한 느낌.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 어떤 형태로든 폭력이 수반되지 않을 수 없다는 진실과 이 폭력을 온 몸으로 거부하고 나무가 되어가는 영혜를 보면서 측은함과 거부감을 동시에 느끼는 나를 보면서 더욱 불편해졌다.  원래 진실은 불편한 것이라고 했던가.이 불편함이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를리 퐁티와 미쉘 푸코가 생각났다. 메를리 퐁티는 '생존한다는 것은 폭력적'이라고 했다. '나이외의 생명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삶의 폭력성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이러한 상식적인 질문을 하는 영혜를 우리 사회는 정신병원에 가둔다. 푸코는  "광인에 대한 판단이 사법기관에서 병원으로 넘어오면서 지와 권력이 결탁했다.지와 권력이 결탁하면서 인간의 표준화라는 방향을 목표로 설정하였고 신체에 대한 표준화의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라고 말했다. 영혜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는 더욱 폭력적이 된다. 최소한의 폭력을 행사하면서 우리의 삶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라도 영혜를 이해하는 그리고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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