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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2016.09.28 17:14

임동영 조회 수:8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출판
현대문학
발매
201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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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복음같은 책이 될 것 같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생생한 조언을 글쟁이가 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몸으로 관통시켜 글쓰기 에너지로 분출시킬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하루키는 소설가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원만한 인격과 공정한 시야를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소설가는 일반적으로 이기적이고 자좀심이 강하고 경쟁의식이 강하다. 마르쉘 프루스트와 제임스 조이스라는 당대 최고의 두 작가가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만났는데 두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단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소설가가 어떻게 보면 이런 괴팍하고 폐쇄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누군가가 소설이라는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에 관대하다. 소설가가 되기 위한 특별한 기술이나 재능이 필요한 것은 없다. 누구나 글을 쓸 줄 알고 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소설을 쓸수 있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시장에 진입장벽이 낮다. 하지만 오래 버티기는 힘들다. 신인 작가중에 첫 소설이 대중의 엄청난 관심을 끄는 사람은 가끔 나타나지만 20~30년 장수하는 사람은 몇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소설의 이런 특성때문에 소설가들이 다른 사람이 소설시장에 진입하는 것에 대해서 관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단 링에 올라와봐. 몇 라운드나 버티는지 한번 보자' 이런 자세인 것 같다.

하루키는 소설은 너무 머리가 좋은 사람에게 적합하지 않은 분야이다. 자신에 대한 관대한 평가이기도 하겠지만 소설 쓰기를 꿈구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목소리가 아닐 수 없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저속의 게임이다. 특히 장편소설을 쓸때에는 하루에 한두페이지의 분량을 몇년에 걸쳐서 써내야 한다. 이것은 웬만한 인내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그래서 소설은 비효율적인 작업이다.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는 일이 아니다. 무엇이든 단기간에 찍어내듯 만들어내는 현대 사회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효율성의 측면에서 퇴출1호의 대상일 것이다. '이를테면'의 연속인 작업이라서 결말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 소설을 읽는 것 역시 비효율의 극치일지도 모른다.소설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내적 충동과 장기간에 걸친 고독한 작업을 버텨내는 강인한 인내력이 소설가가 지녀야하는 자질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장기간의 작업에는 규칙성이 중요하다. 하루에 원고지 20매(2.5페이지)를 매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혹자는 '그게 무슨 예술이야? 글을 생산하는 공장느낌이 나잖아?'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키는 소설가는 '예술인'보다는 '자유인'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가 쓰고 싶은 내용을 자기가 쓰고 싶을때 자기만의 패턴 혹은 방법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한다.

하루키는 모두에게 알려져있듯이 대학을 7년만에 간신히 졸업하고 취직을 하는 대신 음악을 맘껏 들을 수 있는 카페운영을 하기로 결심한다. 빚을 갚아나가고 여러번 카페를 옮겨가는 등 카페운영에 힘겨운 20대를 보냈던 그는 카페운영이 안정적이 되었을때 진구야구장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우즈의 경기를 보다가 epiphany(사물이나 본질에 대한 직관 통찰)을 경험했다고 한다. 하늘에서 하늘하늘 무엇인가가 내려오는 것을 느꼈고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반년만에 '바람의 노래'를 완성했다고 한다. 처음에 문체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영어로 일단 초안을 쓰고 그것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방법을 썼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쓰면 간결한 문체가 되고 이것을 일본어로 옮김으로써 불필요한 장식이 빠진 간결한 문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외국어를 통해 창작하는 효과의 재미를 보았지만 항간에 번역체라는 지적을 받게 된다. 그는 이처럼 불필요한 수식을 배제한 뉴트럴한 그리고 활동성이 뛰어난 문체를 지향한다. 바르트가 말한 카뮈 '이방인'의 에크리튀르를 하루키도 이상적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바르트는 주인공의 내면을 파고드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고 주변에 대한 설명을 중점으로 하는 에크리튀르를 최고의 에크리튀르라고 생각했다.

재즈 음악을 좋하하는 것으로도 알려진 하루키는 소설을 쓸때 문장을 쓴다기 보다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에 가까운 감각이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재즈음악에서 느껴지는 리듬감과 화음 그리고 임프로비젼 등의 감각이 글을 쓸때 느껴진다는 것이다. 피아노의 88건반으로 이루어진 재즈음악의 다양성과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방식도 무궁무진하다.

​최근 노벨 문학상의 강력한 후보로 하루키가 떠오르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키는 상복과 인연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루키는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특정상이 아니라 '나는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 라는 인식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하루키는 아쿠타가와상 후보로 두번 지명되었다가 두번 다 수상하지 못했다. 문학상 심사위원의 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독자의 평이 중요하다. 헤밍웨이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는지 안받았는지 독자들은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그의 소설을 좋아한다. '레이먼드 챈들러', '넬슨 올그런'도 상에 대한 비가치성을 강조한 바 있다. 참된 작가에게는 문학상따위 보다 중요한 것이 아주 많다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개인주의적인 자아를 지향하는 하루키의 성향이 소설의 주인공들에도 투영된 것이리라. 하루키는 소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라는 인간속에는 나 자신의 고유한 버전이 있고 거기에 형태를 부여해나가는 고유한 프로세스가 있습니다. 그 프로세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삶의 방식에서부터 개인적이 되지 않을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강신주 같은 철학자는 이러한 개인주의적 성향의 하루키의 소설에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집단속에 매몰된 개인을 발견한 하루키의 소설에 열광하고 있고 이것은 우리 사회가 그리고 우리 문학이 개인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는 반증으로도 해석된다.  ​

하루키에 의하면 특정한 표현자를 '오리지널'이라고 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다른 표현자와 명백히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사운드든 문체든 형식이든 색채든)을 갖고 있다. 잠깐 보거나 들으면 그 사람의 표현이라고 (대체적으로)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2. 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 업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 스타일은 성장해간다. 언제까지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자발적/내재거인 자기 혁신력을 갖고 있다.그 독자적인 스타일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반화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되어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로 편입되어야 한다. 혹은 다음 세대의 표현자의 풍부한 인용원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3.오리지널해지기 위해서는 독창성 뿐 아니라 자가발전하고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야 한다. 오리지널한 작품은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오리지널하다가 나중에는 레퍼런스가 된다.

하루키는 자신만의 오리지널 문체나 화법을 발견하는데는 우선 출발점으로서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나간다는 것보다 나에게 무언가를 마이너스 해나간다는 작업이 필요하다라고 이야기 한다. 하루키의 이 말을 듣고 도덕경의 한구절이 떠올랐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도덕경, 노자] 

배운다는 것은 날마다 더해가는 것이고 도를 행한다는 것은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무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하루키는 날마다 도를 행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루키는 자신이 쓰는 소설에 오리지널리티가 있다면 그건 자유로움에서 생겨난 것이다라고 말한다. 불현듯 시작했기때문에 소설에 대한 욕심도 없었고 제약도 없었다. 다시 말해 어께에 힘을 주지 않았다. 하루키는 쓰고 싶은 마음이 퐁퐁 솟을때에만 글을 쓴다. 그래서 writer's block이라는 것을 겪지 않았다. 글을 쓰고 싶지 않을 때는 번역을 한다. 번역작업은 글쓰기에 대한 감을 잃지 않게 해줌으로써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 번역작업을 하지 않을때에는 에쎄이를 쓴다. 이것은 글쓰는 사람들이 새켜들어야 할 말인 것 같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고 자신을 위해서 자신을 자유롭기 하기 위해서 글을 써야한다. 이런 자유로움이 혹시 생길 수 있는 경제적 지원을 가능하게하는 오리지널리티의 원천이 될 것이다. 급하게 목적을 가지고 글을 쓰지 말자.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와 문체를 만들어야 한다. 하루키는 기본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단편적인 에피소드나 이미지나 광경이나 언어를 소설이라는 용기안에 척척 집어놓고 입체적으로 조합하는 것이 소설을 쓰는 작업이다. 이런 작업에 재즈음악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하루키는 35년간 작가 생활을 하면서 단편도 쓰고 장편도 쓰고 에세이도 쓰고 여러 장르와 여러길이의 글들을 써왔지만 장편을 쓸때 자신의 맛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장편은 생명선이고 단편이나 중편은 장편을 쓰기 위한 연습의 자리이자 유효한 스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미리 글 청탁을 받지 않고 글을 쓰기 때문에 장편을 쓰더라도 충분한 시간을 들이면서 자기만의 페이스로 글을 쓸 수 있다. 장편을 쓸 경우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온 신경을 장편에 집중한다. 글이 써지지 않을때 번역을 틈틈히 하거나 장편 스토리 전개에 방해받지 않을만한 책을 읽는다.
 

하루키는 이 책에서 친절하게 자신의 글쓰기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아마도 많은 작가들이 이와 같은 방법을 쓰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글쓰기가 하나의 도자기를 구워내는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초고는 생각나는대로 빠른 속도로 써내려간다. 이 때에는 구성 시점 등 디테일한 부분을 생각하지 않고 일필휘지로 써내려간다. 초고 후 1주일 정도 쉬고 첫번째 고쳐쓰기에 들어간다. 첫번째 고쳐쓰기를 할때에는 많이 수정한다. 챕터하나를 통째로 날리는 경우도 있다. 이 작업은 통상 한달 정도가 소요된다.
첫번째 고쳐쓰기가 끝나면 1주일 정도 쉬고 2번째 고쳐쓰기에 들어간다. 이때에는 세세한 수술 작업이 진행된다.
세번째 고쳐쓰기는 수술이라기 보다는 수정이다.마이너한 변경 작업이 시작된다. 세번째 고쳐쓰기가 끝나면 묵혀둔다.소설도 양생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다음 타인의 의견을 듣는다. 처음으로 의견을 듣는 사람은 아내다. 출판사의 편집자는 자주 바뀌지만 아내는 바뀌지 않고 일관된 의견을 줄수 있는 좋은 조언자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은 때로는 화도 나고 의견 충돌도 발생하지만 '트집 잡힌 부분이 있으면 고친다'가 나의 원칙이다. 어떤 문장이든 반드시 개량의 여지가 있다. 망치질(교정하는 작업)을 즐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루키가 글쓰는 이에게 조언하는 것은 소설을 쓰려면 '피지컬'한 일에 의식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해마 뉴런은 유산소 운동을 통해서 증가된다고 한다. 하지만 28시간 이내에 지적인 자극을 주면 활성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잘 알려진대로 하루키는 달리기 광이다. 달리기는 그의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었다라고 이야기한다. 달리기에 대한 그의 생각은 그의 에쎄이 '달리기를 말할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책을 읽고나면 글이 쓰고 싶어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당신을 보게 될 것이다.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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